송현시인 애국시 전집(10권) 출간 기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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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시인 애국시 전집(10권) 출간 기념 인터뷰
  • 장문정
  • 승인 2019.06.06 12: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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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의 금자탑 애국장편 서사시

 

송 현 시인
송 현 시인

 

 

송현시인 애국시 전집(10) 출간 기념 인터뷰

 

2019.6.4.

본사 회의실

대담: 장 문정 편집인

 

 

 

--선생님!

축하합니다. 애국시집이 자그마치 10권으로 전집이 출판되었더군요. 애국시집이란 어떤 시집인가요?

 

송현: 감사합니다. 애국시집이란 제가 편의상 붙인 이름입니다. 2016년 박 근혜 대통령 사기 탄핵 정국 초기 즉 마녀사냥과 인민재판이 시작될 무렵부터 저의 소박한 정의감과 작은 애국심으로 쓴 시들을 묶어서 첫 번째 시집으로 출간할 때 애국시집이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애국시집이 한 두권도 아니고 자그마치 아래 소개하듯이10권이 출간되었다는 것은 한국문학사에 예사로운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송현시인 애국시집 10권 제목>

 

제 1집 무궁화는 다시 피어난다.
제 2집 태극물결 명령이다 계엄령을 준비하라

 

 

 

 

 

 

 

 

 

 

 

제 3집 결사항전
제 4집 서청대 편지

 

 

 

 

 

 

 

 

 

 

제 5집 나는 목숨을 구걸하지 않겠다.

 

제 6집 지금 대한민국은요?

 

 

 

 

 

 

 

 

 

      제 7집 내 목숨 가져가고 박대통령 석방하라.

 

 

       제 8집 여왕의 귀환

 

 

 

 

 

 

 

 

 

 

 제 9집 나는 대한민국과 결혼했습니다.

 

 

제 10집 나, 반드시 살아서 돌아가리라.

         

 

 

 

 

--이런 일이 한국문단에 과거에도 있었습니까?

송현: 제가 과문한 탓인지 없었지 싶습니다. 저는 아직까지 한국 문학사에서 애국시집을 10권이나 쓴 사람을 보지 못했고, 시집으로 출간한 것도 역시 보지 못했습니다.

 

사실 제가 애국시를 처음 쓸 때는 열권까지 쓸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였습니다. 단지 한편 한편 쓰다보니 무려 10권이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언제부터 시인으로 활동하였습니까?

송현: 저는 부산사람입니다. 젊은 날에는 문학청년이었습니다. 부산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글을 쓰는 공부를 하면서 항상 문단에 등단하여서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부산에서 제가 아무리 않은뱅이 용 쓰듯 열심히 시를 써봐야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서울이 있는 북쪽 하늘을 쳐다보면서 문학의 꿈을 키워나갔습니다.

 

--문단에는 언제 등단하였습니까?

제가 부산에서 북쪽하늘을 쳐다보고 문학청년의 꿈을 키우던 어느 날 서울에 사는 제 아는 분이 무슨 말 끝에 서울 서라벌고등학교에 국어 선생 자리가 비었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분은 학교 등에 복사기와 사무기기 등을 납품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업무상 이 학교 저 학교를 다니다가 우연히 그런 정보를 들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그 뒤에 어찌되었습니까?

송현: 그 소리를 들은 이후로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밑져야 본전인 셈 치고 서울로 가서 그 학교 교장 선생을 만나서 그 학교에 취직을 시켜달라고 간곡히 부탁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 시절도 우리 사회가 부패했기 때문에 아무 빽도 없이 돈 한푼 없이 취직을 부탁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소리였습니다.

 

저는 날을 잡아서 무작정 상경을 하여서 물어물어 미아리에 있는 서라벌 고등학교를 찾아 갔습니다. 정문 수위에게 교장 선생님을 뵈러 왔다고 하니 약속하고 왔나?”고 거의 반말로 물었습니다.

 

수위가 제게 거의 반말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제 차람새가 아주 특이했기 때문입니다. 그때 제 차림새가 한 마디로 탈영병 수준이었습니다. 왜냐면 그 무렵 제가 존경하던 함 석헌 선생이 유신을 반대한다고 삭박을 하였습니다. 부산에서 중학교 국어 선생을 하던 저는 그 소식을 듣고 선생님의 뜻에 따른다는 의미에서 삭발을 하였습니다. 아마 전국 중고등학교 교사 중에서 유신반대 삭발을 제가 최초이자 유일했지 싶습니다. 그 뒤에도 삭발한 선생이 있다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하였습니다.

 

삭발한지 한 두어 주일이 지났을 때라 제 머리카락이 약 2센티 정도 되었지 싶어요. 그러니 거의 탈영병 수준의 머리카락 때문에 저를 아주 이상한 놈으로 보았지 싶습니다.

 

그런 이상한 이미지 때문에 수위가 거의 반말 수준으로 말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어찌되었습니까?

송현: 제가 말했습니다. "'교장 선생님이 학교에 계시기는 합니까?” 그러자 수위는 계신다고 하였습니다. 제가 다시 물었습니다.

--해가 지면 퇴근하십니까?

수위는 그런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해지면 퇴근 하실 때까지 제가 여기서 기다리겠습니다.

 

저는 수위실 앞 땅바닥에 털썩 퍼질러 앉았습니다. 그러자 수위는 너무나 뜻밖의 상황을 보고 좀 당황하는 눈치였습니다.

 

그 뒷 이야기를 자세히 하자면 적어도 23일을 걸릴 것이라서 오늘은 생략하겠습니다.

 

교장과 담판에 성공하여 1974년에 서라벌고등학교로 왔습니다. 그 다음 해에 월간 시문학지 미당 서정주 선생 추천으로 시인으로 등단하였습니다.

 

--그 뒤에 시인으로서 열심히 문단 활동을 하였습니까?

송현: 아닙니다. 전혀 그러지 못했습니다.

 

--왜요? 시인으로 등단하여 문단 활동을 열심히 하려고 상경하였다면서 왜 문단 활동을 열심히 하지 않았습니까?

송현: 제가 등단한 뒤에 같은 잡지 출신 시인들이 여나명 모이는 자리에 나갔습니다. 앞으로 자주 만나기로 하고 그날 참석한 시인들의 연락처를 적었습니다.

 

내가 구석 자리에 앉았기에 거의 꼬래비로 적게 되었습니다. 내 앞에 열 서너명의 시인들이 자기 이름과 전화 번호 그리고 주소를 적었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그들이 한결같이 자기 이름을 모두 한자로 적었습니다. 물론 저는 제 이름을 한 글로 적었습니다.

 

시인이란 사람들이 자기 이름을 한문자로 적은 것을 보고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시인이라면 모국어를 가장 사랑하고 가장 아끼고 갈고 닦아야 할 사람이 아닌가! 자기 이름도 제나라 글자로 적지 않는 얼빠진 사람들과는 같이 문학 활동을 할 마음이 눈꼽만큼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날 이후로 거의 시인들 모임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문단의 미아가 되고 말았습니다. 거기다가 제가 시인이긴 하지만 시가 제 삶의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물론 시가 제게 소중한 영역이기는 해도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여러 가지 분야에도 공부를 하고 활동을 하다보니 자연히 시단 활동은 소홀하게 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니 문단에 등록만 하고 활동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의 미아가 되고 말았습니다.

 

--송현 선생님은 젊은 날에 누구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까?

송현: 함 석헌 선생님입니다. 함 선생님은 저의 정신적 스승입니다.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부산 보수동 헌책방에서 철지난 잡지 한권을 뒤지다가 화보에 소개된 하얀 두루마기를 입은 멋진 할아버지를 보고 흠뻑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 할아버지가 바로 함 석헌 선생님이었습니다. 그 뒤에 책방 아저씨의 소개로 선생님의 자서전 격인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를 밤새워서 읽고 다음 날 다시 헌 책방에 가서 함 선생님의 다른 책을 추천 받았는데 그것이 바로 뜻으로 본 한국역사였습니다. 저는 그 책을 읽으면서 책장을 찢고 싶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때 저는 처음으로 역사가 무엇인가를 알았습니다. 그리고 역사적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것이 제가 새롭게 태어난 것입니다. 그 전의 저는 죽고 새로운 송현이 태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을 버리고 송현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지어서 전혀 새로운 삶을 살기로 다짐한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애국시를 쓸 수 있는 최초의 바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애국시를 쓴 동기는 무엇입니까?

 

송현: 앞서 간단히 지적한대로 아무 죄도 없는 박 근혜 대통령을 마녀사냥하고 인민재판하고 사기탄핵 하는 불법적이고 악랄한 과정을 보면서 이놈들이 해도 해도 너무한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제 속에 있는 소박한 애국심과 작은 정의감 때문에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 글을 쓰는 사람이 약 1만명 가량 된다고 하는데 그 중에서 단 한사람의 문인도 분연히 일어나서 사기탄핵을 규탄하는 글을 쓰는 것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제 한 사람이라도 "'아니오" 할 때 "'아니오" 라고 말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약없이 애국시를 썼습니다.

 

---대단하십니다.

송현: 이왕 내친 김에 제 1시집의 머리말을 소개합니다.

 

나는 재작년엔가 한글학회 강당에서 초등학교 한자 교육 반대 대책 회의를 하다가 회의장에서 쓰러졌다. 심장이 멎고 말았다. 119에 실려 강북 삼성병원 응급실로 갔다.

 

심장으로 공급되는 혈관 세 개가 다 막혀 피가 공급되지 않아 심장이 멎었다고 했다.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 이미 죽은 시체였다.

 

담당 의사는 밑져야 본전으로 가족의 동의를 얻어서 혈관을 뚫는 수술을 시도하였다. 다행히 내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담당 의사가 말했다.

 

---심장이 멎었다가 18분만에 다시 살아났습니다. 일종의 기적이고 일종의 부활입니다! 이런 일은 처음 보았습니다.

 

나는 지금 덤의 인생을 살고 있다. 그때 내가 죽었다 해도 어쩔 수가 없다. 그런데 나는 운이 좋아서 다시 살아나 보너스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귀한 삶을 살다보니 그 전에 못한 가치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이제 나는 아무 두려운 것도 없고, 누구 눈치 볼 것도 없고, 뒤를 돌아볼 것도 없다! 잔머리 굴리면서 계산 할 것도 없다.

 

나는 부끄럽게도 이날까지 내 앞가림 하는데 정신이 없었고 그래서 항상 내 코가 석자였다. 주위를 돌아볼 형편이 아니었다. 그래서 효도 한번 제대로 못했고, 이웃을 위해서 변변한 일도 한가지도 못했다. 그리고 반반한 시 한편을 못썼다. 그러니 내 조국을 위해서는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다.

 

이제 남은 삶은 주위도 돌아보고 이웃도 생각하고 내 조국도 생학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런데 최근에 김대 중 노무현 이후 근 이십년동안 좌빨 언론과 좌빨 국개들과 좌빨 사법부가 손을 잡고 박근혜 대통령을 마녀사냥과 인민재판식의 탄핵을 하였다.

 

다 알다시피 민주주의는 법치가 기본이고 법치의 기본은 절차과 과정이 합법적이어야 한다. 그런데 이번 박대통령의 탄핵은 완전 마녀사냥과 인민재판을 하였으니 말이 탄핵이지 생매장이나 다름없다. 좌빨들의 이 천인공노할 악행들은 낱낱이 이 나라 역사에 영원히 기록 될 것이다.

 

뜻밖에도 난데없이 탄핵 정국 이후로 갑자기 나는 애국자(?)가 되고 말았다. 지난 연말에 무슨 신문도 끊고 TV는 이미 오래 전에 다 끊었다.

 

내 속에 있는 나라 사랑과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꿈틀거려 도저히 촛불 집회로 나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동안 나는 주말마다 한 촛불 집회에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 울면서 태극기를 흔들었고 울면서 탄핵반대를 외쳤고 울면서 국개해산을 외쳤다.

 

내딴에는 애국 집회에 참가한 것이 아니라 구국 전투에 출전한 것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내전이라도 벌어지면 내 손으로 좌빨 몇놈은 사살할 각오를 하고 나갔다.

 

그리고 평일에는 밤마다 나라 걱정에 잠을 못자고 새벽까지 뜬눈으로 조바심을 치면서 혼자서 애국 삐라를 수백장을 썼다. 그리고 거의 매일 페이스북에 올렸다.

 

나는 젊은 날에 서 정주 선생 추천으로 등단하였다. 그런데 이날까지 살아오면서 시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젊은 날에는 시를 원고지에 글자로 쓰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날까지 치열하게 살아오면서 알게 된 것은 놀라운 것이 진정한 시는 내 삶이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나는 시를 원고지에 쓰지 않고 삶으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 시는 내 땀과 눈물로 쓴 내 삶의 기록이고 내 삶의 흔적이다.

 

최근에 페이스북에 발표한 애국 삐라와 졸작 시들은 다 내 삶의 한 부분이고 내 땀과 눈물로 쓴 시이다. 시의 형식에서 벗어난 것이라도 설명 한줄 삐라라 해도 내게는 소중한 시이고, 이것이 내가 내 조국을 위해서 바치는 마지막 헌사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독자들은 나의 이런 마음을 이해해주면 좋겠다. 그러니 사소한 문제로 내게 시비를 걸지 말기 바란다. 나는 갈길이 멀고 빠쁘다!

 

끝으로 나의 이런 마음과 내 조국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잘 이해하고 귀히 여긴 한국인문학대학 출판부가 서둘러서 시 시집을 멋지게 만들었다. 아마 이 은혜는 내가 마음 속에 기억만 할 뿐이지 죽기 전에 다 갚지는 못할 것 같다. 이런 나를 용서하길 바란다.

 

오늘 밤에도 나는 애국 삐라를 써서 인터넷에 올려야 한다. 만약 내가 촛불 집회에서 태극기 흔들며 목놓아 탄핵반대와 국개 해산떡검 해체를 외치다 죽어도 일종의 순국이고 내 연구실에서 애국 삐라를 쓰다가 죽어도 같은 순국이지 싶다.

 

만약 내가 태극기 전투에서 목놓아 외치다가 그 자리에서 쓰러져 죽더라도 좌빨들처럼 시체장사 하지 말고 화장하여 절반은 내 고향 낙동강에 뿌리고 절반은 내가 사랑한 한강에 뿌려주기 바란다.

 

내 조국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구중궁궐에서 생매장 당하기 직전에 부활할 박 근혜 대통령을 사랑한다.

 

 

2017. 1. 17.

 

대한민국

서울 무향선원에서

 

송 현

 

--애국시를 어디에 발표하였습니까?

송현: 문화 예술분야가 모조리 좌빨들이 점령한지가 오래인데 단 한군데도 애국시를 발표해줄 지면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페이스북에 발표하는 것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매일 매일 시를 쓰는대로 페이스북에 발표하였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은 페이스북에 제 페친이 약 5천명이 되는데 전 세계에 흩어져 있습니다. 그러니 제가 시를 한편 써 올리면 전세계에 공개가 되는 것입니다.

 

--그 동안 애국시를 계속 쓰면서 당한 불이익은 없습니까?

송현: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르지만 제가 애국 시를 쓴 이후로 지금까지 약 3년 동안 원고청탁, 강연청탁, 방송출연, 책 출판 제의가 단 한건도 없었습니다.

 

사실 제가 그 동안 약 80여 권의 책을 출판했고, 그 중에는 밀리언셀러가 된 책도 있습니다. 그리고 방송 출연까지 완전히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거기다가 기업체나 각종 단체의 강연도 완전히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우연인지 필연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국민애국시인이란 칭호에 대해서 말씀해주십시오.

송현: 20176정의로운 시민행동정 영모 대표님께서 제가 써서 발표하는 애국시를 보고 감동하여 저를 성원하고 격려하는 뜻에서 국민애국시인이란 칭호를 선물하자고 제의하여 200여명의 페친이 찬성하자 저에게 국민애국시인이란 칭호를 주었습니다. 물론 이는 제게 너무나 과분한 처사라 생각합니다.

 

---애국시집을 한 두권도 아니고 무려 10권이나 출판한 출판사는 어떤 출판사입니까?

송현 : 애국 시집 10집에 붙인 감사의 말을 고대로 소개하겠습니다.

 

{감사의 말}

 

소박한 정의감과 작은 애국심으로 쓴 애국시

--장편애국서사시집 10권 출간을 기리며

 

세상에!

이게 꿈이냐? 생시이냐?

 

죄없는 박 근혜 대통령을 마녀사냥 , 인민재판, 사기탄핵하던 정국 초기부터 나는 소박한 정의감과 작은 애국심으로

밤마다 울분과 눈물로 내 모든 것을 걸고 애국시를 썼다. 그리고 주말마다 태극기 들고 대한문 앞, 서울역으로 나갔다.

 

애국시를 시집으로 출판하는 것도 애국이라 생각하고 자그마치 10권까지 출판해준 조아북스 장 문정 대표의 용기와 뜨거운 애국심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일은 한국문학사에 없었던 일이고 이런 용기있는 출판인은 매우 드물 것이다.

 

내게 국민애국시인이란 과분한 작위를 주신 정의로운 시민운동정 영모 대표님과 이를 지지해준 200여명의 용기있는 애국동지들에게도 감사한다.

 

그리고 서울역. 대한문앞, 대구. 청주, 출천, 울산. 통영, 대전, 부산 등지에서 시집을 사준 애국동지들에게 감사한다.

 

그 동안 시를 통해서 여러 차례 밝힌대로 나는 박 근혜 대통령이 무죄석방 될 때까지 애국시를 쓸 참이다. 왜냐면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애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박 근혜 대통령이 옥사라도 한다면 나는 박 근혜 대통령이 부활할 때까지 애국시를 계속 쓸 생각이다. 그러나 이런 불행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면 쓰겠다.

 

날이 밝으면 시집에 사인을 해서 서청대로 보낼 참이다. 감옥에서 조국을 구하기 위해서 3년 째 침묵 결사항전을 하고 계시는 박 대통령을 생각하면 갑자기 내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2019. 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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